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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줌마 라라의 일기] 38화. 섹스의 스크럼을 짜고

입력 : 2016-10-19 04:40:00 수정 : 2016-10-18 18: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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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삼중고의 사막에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할 거란 불안감에 시달렸다. 돈을 갚겠다는 ‘썸남’의 약속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남편은 쓰린 속으로 ‘형님, 형님’ 불러대며 일주일이 멀다하고 썸남의 꽁무니를 쫓아다녔으나 아무런 보람이 없었다.

그즈음의 겨울밤이었다. 계속되는 부부싸움에 진이 빠진 우리는 안방으로 고작 몇 걸음을 옳길 기운조차 없어 쇠락한 몸으로 거실 평상에 드러누웠다. 베란다 창밖으로 소진된 삶의 의욕이 어둠어둠 내려앉고 있었다.

우리는 등을 돌린 채 드러누웠다. 어떤 말도 서로를 찌르는 가시여서 한 마디 말도 나눌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끝없는 뒤척임과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불행의 썩은 눈알을 파먹느라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적막한 밤에 수시로 부릅떠지는 젖은 눈들. 자정을 넘어 누운 밤이 새벽 3시가 되어가도록 잠들 줄 몰랐다.

무슨 생각에서 그랬을까. 난파된 집의 지붕에 항복을 고하는 흰 깃발을 내걸어야 할 그 때, 행복을 남발한 공수표들이 허탈한 바닥에 뒹굴고 있던 그 때, 애들은 우리들 주름을 먹고 씩씩하게 자라겠지 위안하던 그 때, 무엇에 동했는지 희붐한 어둠 속에서 몸을 섞었다.

한숨과 한숨이, 뒤척임과 뒤척임이, 잠들 수 없음과 잠들 수 없음이 한 데 섞였다. 우리들의 몸은 깊은 침묵을 휘저으며 잠시 밤의 대기 속으로 둥실 떠오르는 듯도 하였다. 황홀의 순간에는 부르르 떨기도 했던가. 하지만 언제 뒤엉키기라도 했느냐는 듯 곧 서로의 몸에서 속절없이 떨어져 나왔다. 섞일 수 없는 외로움이 쓸쓸히 나동그라졌다.

비릿한 환락의 끝에 누워, 우리 둘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음을 느꼈다. 우리의 혀는 여전히 쓴 모래를 잔뜩 문 채 어떤 말도 나눌 수 없었다. 다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끝없는 뒤척임과 깊은 한숨들. 내 눈물이 네 눈물에 섞이지 못하고 덩그러니 가감 없는 그대로의 질량으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황홀도 핥지 못한 저마다의 쓰린 상처는 뒤척임뿐인 긴긴 밤의 나락으로 가라앉았다.

몸에도 언어가 있다면 그 밤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우린 그저 ‘살의 위로’가 필요했던 것일까. 사랑의 빈혈을 치료할 파릇파릇한 살의 수혈. 살결이 살결을 어루만지고 한 데 섞여 내가 너인 듯 네가 나인 듯 흘러가는 곳. 굳이 우대리가 아니어도, 라라가 아니어도 상관없을 갈급한 몸짓이었다. 비록 한 순간에 피고 질 위안일지라도, 잠시의 황홀로나마 슬픔의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서로에게 값싼 감정의 동전을 치르고 혼자선 피울 수 없는 봄을 구걸할 수 있다면. 외로움의 실오라기를 벗고 익명의 실팍한 살내음이 진하게 흘러 들어오길 바랐을 것이다.

아니라면 그건 ‘새벽의 스크럼’이었을 것이다. 네 팔에 내 팔을 바싹 끼고 삼중고의 사막을 기어코 건너가자는 다짐 같은 것. 이 밤의 어둠과 한숨, 누구에게도 위로 받을 수 없는 비릿한 상처를 보듬고 죽어도 이 깍지를 풀지 말자는 결심 같은 것. 불안의 무덤에 갇히지 않기 위해 외따로운 몸과 마음을 어떻게든 한데 섞여야 한다는 절박함 같은 것. 새근새근 자는 저 어린 것들의 위태로운 둥지를 위해 연대의 스크럼을 짜고 전진하는 작은 몸짓이었을 것이다.

김라라 / 식품기업 R사 마케팅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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