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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35. 영적인 세계를 권했던 백 선생

입력 : 2016-08-24 04:45:00 수정 : 2016-08-23 18: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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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인천의 한 사찰을 갔을 때 일이다. 큰 스님은 나를 유심히 살피더니 던지 듯 말씀하셨다. “니가 용대가리냐, 뱀대가리냐?” 이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스님께서 저를 보시는 눈이 용눈이십니까, 아니면 뱀눈이십니까?” 그러자 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너는 도(道)보다 영(靈)이 먼저 발달했구나. 좀 더 미련해져야 하는 데…”하며 말했다. 큰 스님은 이미 영성을 자제할 수 없었던 사춘기 청년의 마음을 꿰뚫고 계셨다.

내가 태어나고 어머니는 당시 전주에 머물고 있던 유명한 명리학자에게 나의 사주를 물었다. 명리학자는 내 사주를 받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절대 이 사주를 남에게 알리면 안됩니다” 그는 조선시대라면 자칫 역적이 되거나, 종교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사주라며 예전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이와 비슷한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은 혁명으로 대통령까지 됐지만 암살로 생을 마감한 박정희 전 대통령, 장원급제를 했지만 조부의 치부로 평생 전국을 떠돌다 57세에 객사한 김삿갓,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 등..., 내 사주는 그보다 더 특이하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아들 인생에 평지풍파(平地風波)가 일까 노심초사하였다. 명리학자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생일을 앞당기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어머니도 나름의 계산을 해보시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종종 내 손을 잡고 사주를 보러가곤 하셨다. 어머니가 찾아간 사람 중에는 당대 최고의 사주대가 ‘백 선생’이라는 분도 있었다. 백 선생은 K사범대학교 교수로 소위 용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 분을 만나고자 전국 팔도에서 사람들이 벌떼처럼 학교로 몰려오는 바람에 평상시엔 계룡산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그날 백 선생은 어머니에게 세 가지를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별수가 있으며, 아들은 학업성취가 좋지 않고, 딸은 현재 만나고 있는 남자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 같이 좋은 얘기가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기분이 상해 어쩔 줄 몰라 하셨지만 백 선생이 말한 세 가지는 훗날 틀리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는 백 선생을 찾아갔다. 백 선생의 머리는 백발이 되었지만 계룡산의 맑은 기운 덕분인지 마치 도사처럼 보였다. 성(姓)처럼 진짜 백(白) 선생이 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손에 끌려왔던 차일혁 총경의 아들입니다” 그러자 백 선생은 기억이 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대뜸“ 그래 자네는 돈을 가질 것인가, 정치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세계로 나갈 것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당황했다. 20대 청운의 꿈을 품은 내게 영적인 세계로 나가라니 순간 학창시절 인천 큰 스님으로부터 같은 얘기를 들었던 생각이 났다. 내가 황당해 말을 잇지 못하자 백 선생은 가르치 듯 조언을 해주었다. “이 세 가지 운명 중에 가장 유익한 것을 선택하길 바라네. 공부는 10년 밖에 가지 않고 정치는 3년을 가지 않지. 재산은 이득을 보는 것 같아도 인간이 박해질 수밖에 없어. 그러니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시게”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추며 당부하셨다. “절대로 영능력자는 아무 것도 가져선 안 되네. 또한 유명할 생각도 해선 안 되고, 재산을 가질 생각도 해선 안 되며, 권력가와 어울려서도 안 되네. 이것저것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다 갖게 될테니 말이야. 또한 살아서 유명해질 생각은 마시게. 죽은 뒤에 유명해질 생각을 해야 하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영능력자! 그것은 내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었다. 당시 나는 법관을 꿈꾸며 학교 도서관에서 사법고시 준비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백 선생의 말에 귀를 씻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상한 나는 내색은 안했지만 ‘괜히 찾아왔다’는 생각에 머릿 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어머니와의 추억까지 떠올리며 힘들게 찾아온 길이 헛수고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백 선생의 말을 안 들을 걸로 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했다.

그 때였다. 백 선생은 갑자기 호탕하게 웃었다. 마치 속을 꿰뚫고 있다는 듯 내 눈을 쏘아보더니 “지금 자네가 내 말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언젠가는 이해가 될 걸세. 그때가 되면 내 생각이 다시 날 것이야” 그것이 백 선생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듬해 다시 백 선생을 찾아갔지만 이미 유명을 달리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백 선생은 나의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셨다. ‘마음을 돌이켜볼 때 영대가 밝아진다.(廻光返照覺靈臺)’는 말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처음으로 알려주신 분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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