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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20. 마음속에 복원된 황룡사 9층 목탑

입력 : 2016-06-29 04:40:00 수정 : 2016-06-28 18: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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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찾아가면 지금도 옛 신라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느낌은 매번 똑같지는 않다. 작년에 이어 지난 26일 후암 가족들과 함께 경주 황룡사 옛터를 다시 찾았다. 잡초만 우거진 넓디넓은 황룡사 터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황량하게 했지만, 그 유명한 9층 목탑 터에 올라 30t 무게가 나간다는 심초석에 손을 올려놓는 순간 예상보다 강한 기(氣)가 느껴져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본래 궁궐자리였던 황룡사 터. 풍수적으로는 조산에서 빙 돌아 내려와 몸을 튼 용이 다시 조산을 바라보는 형세(回龍顧祖形)라고 하니 그 어느 곳보다 강한 기가 흐를 것은 당연하다 하겠으나, 그러한 기의 흐름이 얼마나 감지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고 보면 3년 전 겪은 생사의 고비가 아무 의미 없는 고생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흥왕 14년 서라벌 중심에 있던 늪지를 메워 왕궁을 짓기로 하고 보니 늪지에 깃들어있던 황룡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황룡이 떠난 자리에 왕궁 대신 그 자리에 앉힌 것이 황룡사 사찰이고 신라 사람들의 온 신심을 다해 무려 83년에 걸쳐 중창했으며, 그 유명한 9층 목탑은 백제의 명장 아비지를 초청하여 지은 것으로 삼국유사와 찰주본기에 전하고 있다. 하필 9층의 탑이 된 것은 신라의 주변 아홉 나라를 제어하고 신라가 그 위에 우뚝 서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라 한다.

9층 목탑은 황룡사를 지을 때 처음부터 계획에 들어있던 것은 아닌 모양으로 황룡사를 지은 지 74년이 지난 선덕여왕에 이르러 지어진 것이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약 20층 높이의 건물과 맞먹었다는 황룡사 9층 목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몽고의 난으로 소실되어버린 목탑의 정확한 모습은 알 길이 없으나 한 변이 20미터가 넘는 7칸 규모의 목탑은 현재 남아있는 주춧돌과 경주 남산 기슭 바위에 새겨져있는 목탑 그림으로 대략적인 겉모양만 추정할 뿐이고, 무엇보다 그 정확한 높이를 모르고 있다. 학자들 사이에서 고구려 척(尺)이 쓰였다는 의견과 당척(唐尺)이라는 의견이 나뉘고 있는데 그 차이가 무려 17m나 된다니 어이가 없으나, 건축공학이 놀랍게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의 첨단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내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현재 남아 있는 주춧돌만 참고하더라도 그 위에 세워질 수 있는 탑의 구조는 계산해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화재나 전란으로 사라졌던 건물들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다시 재건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관련 기록들이 남아있거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생존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생존해 있을 때 복원되지 못했을까? 그것은 몽골의 눈치를 보는 사이 고려가 멸망해버렸고, 그 뒤를 이은 조선시대에는 이미 사라져버린 옛 왕도에 목탑을 복원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들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주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향후 30년에 걸쳐 황룡사를 복원한다고 하니 새삼 반가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을 지켜본 바가 있다. 시가지화 하면서 훼손된 수원 화성, 화재로 불탄 숭례문, 일제에 의해 무참히 상처를 입은 조선시대의 정궁들 등.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뒷말이 없었던 적이 있었는가. 심지어는 충분한 사료가 있었음에도 시간에 쫓긴다든지 하는 어이없는 이유로 부실복원이 반복되는 것을 보아온 터라 수천 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황룡사 복원은 그 예산만큼 더 큰 부실이 생기지나 않을지 우려가 되기 때문이다.

펜화가로 유명한 김영택 화가가 3개월의 공을 들여 그린 황룡사 9층 목탑을 보면서 그 웅장함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김영택 화가는 “옛사람들의 혼과 정신을 최대한 아름답게 담아보았다”고 했다. 황룡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그렇게 옛 모습을 재현해보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야 말로 그리 확실하지도 않은 복원물을 보면서 정말 9층 목탑이 저 모습일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황룡사를 가까이 느끼게 해주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심초석에 얹었던 손을 거두어 가슴에 댔다. 부디 올바른 복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심초석을 통해 느껴졌던 그 기운을 통해 그 자리에 함께한 후암 가족들의 가슴마다 그 옛날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황룡사를 하나씩 지어졌으리라 믿는다. 그날 그 자리에 함께 한 200여 명의 후암 가족들은 목탑 터를 도는 탑돌이를 하는 동안 하늘은 맑고 바람은 그런 우리를 쉬지 않고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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