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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줌마 라라의 일기] 16화. 사하라 놀이터

입력 : 2016-05-04 04:45:00 수정 : 2016-05-03 18: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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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겐 ‘등나무의 시간’이 있다. 한 자리에 꼼짝 못하고 서서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려 양분을 퍼 올려야 하는 시간. 그래야 내 몸을 친친 감고 아이들의 살과 피가 포동포동 피어나는 것이다. 그만큼 유아기 아이에게 엄마는 전적인 생명의 의지처이다.

‘엄마 없다’에서 까꿍’까지, 잠깐 사라졌다 나타나는 까꿍 놀이에서 내게 허락된 부재의 시간은 길어야 3초에 불과하다. 어미의 붙박인 시간으로 아이는 평생 자유롭게 날갯짓할 힘을 얻는다. 거꾸로 이때 뿌리째 흔들린 경험은 아이를 평생 불안의 둥지에 붙박이게 한다. 아이는 바람을 가르는 온전한 날개를 갖지 못하고 하염없이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와 제 유약한 유년의 뿌리에 시름시름 묶여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도우미가 바뀐 날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온 신경은 애들에게 가 있었다. 아줌마가 낯설어서 애들은 툭하면 작업실 문을 두드리며 떼로 나부러져 울어댔다. 몇 번은 토닥이다 나 몰라라 세워두고 이어폰 볼륨을 높이며 일을 했다. 데드라인이 다가오자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는 아줌마 들으라고 미친 승냥이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니네 여기 오지 말랬지? 한 번 더 오면 죽을 줄 알아. 대체 아줌마는 뭐 하시는 거예요?” 한때 은행장 사모님이셨다는 그 분은 “육십 평생 이런 취급은 처음”이라시며 다음날부터 발길을 뚝 끊으셨다. 어른도 낯선 사람이 힘든 법인데, 하루아침에 바뀐 양육자와 무려 여덟 시간을 함께 지내야 했던 애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마도 둥지의 지축이 별안간 뒤흔들리는 두려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한밤의 외출을 감행한 날도 있다. 영화광 부부였던 우린 영화가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어느 밤 의기투합하였다. “곯아떨어지게 놀아주고 나가자, 오케이?” 일찍 재우고 살그머니 빠져 나오는 데 성공, 우린 모처럼의 콧바람에 신나서 룰루랄라 영화를 보고 새벽 두 시쯤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파트 복도 끝에서부터 숨넘어가는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설마, 후다닥 문을 여니 눈물콧물 범벅이 된 네 살 두 살 두 아이가 대문에 달라붙어 기진맥진 울고 있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 땟지 땟지, 에휴~ 영화가 뭐라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사라진 철없는 부모를 애들은 얼마나 애타게 찾았을까. 그리고 의지할 데 없는 그 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 몸이 두 발 달린 감옥처럼 답답하게 여겨졌다. ‘나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카트나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이 내 우주의 전부라니. 난 모래놀이터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사하라, 사하라, 내 가슴을 뜨겁게 뛰놀게 하던 이름. ’내 몸에 창문을 달아 당신이 들어오게 해다오’ 나는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에 닿는 모래알의 까끌까끌한 감촉을 느껴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양팔을 벌리며 걸었다. ‘그래, 여기가 사하라다, 난 지금 지구의 고아처럼 이 망막하고 광활한 사막 한 가운데를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날 저녁 어스름이 되도록 아이들은 소꿉놀이 그네타기를 하고, 나는 사하라사막에서 실종되는 놀이를 하고 놀았다. 나는 비록 아이들 덩굴손에 꼼짝 마라 묶여있는 한 그루 등나무이지만, 상상 속에서나마 마음껏 뿌리째 들뜨는, ‘엄마’로부터 마냥 무책임해질 수 있는 놀이터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김라라 / 식품기업 R사 마케팅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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