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욱이 ‘힐러’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한 획을 그었다. 외롭고 고독했던 힐러 서정후 캐릭터를 통해 섬세한 감정 열연은 물론 정두홍 무술감독이 입증한 날렵 액션, 그리고 안방 여심을 확실하게 사로잡은 로맨스로 눈부신 연기를 펼쳤다. 뿐만 아니다. 브라운관을 비롯해 공연 무대에서도 넘치는 끼와 재능을 발산했던 지창욱은 ‘힐러’의 OST ‘지켜줄게’를 직접 부르며 극의 몰입도를 한층 배가시켰다. 눈이 호강하는 비주얼은 기본, 연기에 노래 실력까지 탁월하게 갖춘 지창욱은 진정 못 하는 게 없는 완벽한 배우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지창욱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기에 바빴다. 작품이 잘 나온 비결을 유지태와 박민영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송지나 작가와 이정섭 감독이 없었으면 서정후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힘주어 말했다. 또 촬영을 함께한 스태프들까지 하나하나 기억하며, ‘힐러’의 영광을 주변에 돌리기에 바빴다. 이는 단순한 입놀림이 아니었다.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래서 더욱 지창욱이 대단해 보였다.
그는 소위 ‘스타병’에 걸린 스타들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진심으로 작품을 아끼고 위하며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마저 지녔다. 그래서 더욱 지창욱이란 배우가 진솔하게 느껴졌고, 그의 앞날에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힐러’가 대단했던 건, 아이돌 출신 연기자 없이 순수한 배우들로만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6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유지태는 등장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했고, 채영신이란 입체적인 캐릭터를 소화해낸 박민영은 극의 한 축을 담당하기에 충분했다. 워낙 쟁쟁한 배우들과의 호흡이기에, ‘힐러’에 들어가기 전 지창욱의 부담감이 컸을 것 같았다.
“제겐 정말 좋은 기회였어요. 유지태 선배는 대학 선배이기도 한데, 학생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거든요. 그런 선배와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게 됐는데, 이보다 더 큰 영광이 또 있을까요. 민영누나의 경우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정말 좋아요. 굉장히 빨리 친해졌고요, 나중엔 눈빛만 봐도 호흡이 척척 맞았어요. 그렇게 ‘힐러’란 작품을 보면, 유지태 선배가 있고 민영누나도 있고, 송지나 작가님에 이정섭 감독님이 있잖아요. 걱정할 게 전혀 없었죠. 오히려 부담감을 내려놓고 연기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었어요.”
지금 이 시점에서 지창욱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군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게 병역이기에, 지창욱에겐 큰 고민과도 같았을 것. 하지만 지창욱은 의외로 군대에 대해 덤덤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군대에 갈 계획까지 세워놓은 상태였다.
끝으로 지창욱에게 ‘힐러’는 어떤 의미로 남을까.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혹시 ‘터닝포인트’는 아닌지 물어봤다.
“어떤 배우들은 작품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돌멩이가 물살에 휩쓸리다 보면 둥글둥글해지듯, 긴 시간이 지나야 조금씩 다듬어지고 변하는 거죠.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한 작품에서 대단한 캐릭터를 맡고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는 건 아니죠. 터닝포인트는 제겐 무의미한 단어인 것 같고요, 빨리 ‘힐러’를 보내고 다음 작품을 맞아 제 연기인생을 다듬고 싶어요.”
윤기백 기자 giback@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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